게재일 : 2017.03.02
관련기사 바로가기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143264
■
동문 출신 첫 카이스트 수장 오른 신성철 신임 총장
"다른 나라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총장이 된다고 학교가 글로벌 대학이 되는 건 아닙니다. 우리만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지난달 23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임 총장에 취임한 신성철 물리학과 교수(65)는 이 학교 개교 46년 만에 탄생한 첫 동문 출신 총장이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거쳐 1977년 KAIST 물리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지난달 28일 KAIST에서 매일경제신문과 만난 그는 동문 총장 시대를 열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이 크지만 책임감 또한 무겁게 느낀다"고 말했다. 신 총장은 "선배와 스승들께선 내가 KAIST에 기여하는 길은 연구에 몰두해 노벨상을 받거나 아니면 총장이 돼서 KAIST를 세계적 대학으로 키우는 거라고 말씀하셨다"며 "저는 총장으로 길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KAIST 총장 도전사는 3전4기로 요약된다. 2004년 처음 도전했다가 로버트 러플린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에게 밀려 고배를 마신 그는 2006년과 2010년 교수협의회 추천으로 연이어 후보에 올랐지만 역시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 출신 서남표 총장에게 패했다.
신 총장은 "외국 출신 총장을 모셔온다고 곧장 글로벌 대학 반열에 올라서는 건 아니다"며 "남들만 따라 하는 패스트 폴로어 대신 우리만의 모델을 갖고 도전할 때 더욱 경쟁력 높은 대학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VIP' 리더십을 내세웠다. 분명한 목표(Vision)를 세우고 혁신(Innovation)과 열정(Passion)을 보태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대학의 연구 결과나 인재 양성, 기술 사업화 등이 글로벌 수준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며 "VIP 리더십을 바탕으로 KAIST가 글로벌 톱10 대학에 올라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971년 국내 최초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출발한 KAIST의 정체 원인으로 신 총장은 리더십 문제를 꼽았다.
그는 "우리 대학 교수들이나 학생들 개개인은 모두 훌륭하고 연구 성과도 뛰어난데 이들을 한데 모아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강한 리더십은 부족했다"며 "총장이 할 일은 바로 그것"이라고 역설했다.
교육 혁신을 위해 신 총장은 '학부과정 무학과 트랙'을 내세운다. 2학년 말에 세부 전공을 정하는 제도를 바꿔 4학년 학부 내내 무학과로 지낼 수 있는 별도 트랙을 만든다는 얘기다. 신 총장은 "일단 올해 신입생 700여 명 중 100명 정도가 이 트랙에 속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지만 무학과 선택은 학생들의 자유"라고 말했다. 무학과 트랙 전략은 여러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의 대화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신 총장은 "기업인들이 가장 바라는 건 바로 기초가 튼튼한 인재"라며 "과학기술이 지금처럼 급변하는 상황일수록 기초지식이 단단한 인재가 실력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융복합 연구과제 10개를 선정해 초학제적 조직을 마련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서로 다른 연구 분야 교수들과 기업, 정부 출연 연구소가 힘을 합쳐 10대 과제별 연구팀을 만들고, 이를 집중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협업연구실'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한 노(老)교수가 은퇴하면 그의 연구실은 문을 닫고 연구실적 또한 거기서 멈춰버린다"며 "후배 교수나 다른 대학 교수들이 이를 이어받아 연구를 계속하게 함으로써 수직적으로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연구 풍토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그간 과학 분야 노벨상 22개를 거머쥔 일본의 저력도 '교실제'라는 연구제도를 통해 한 연구실이 계속 이어지게끔 한 데 있다"고 강조했다.
교수나 학생이 바로 창업하는 것도 좋지만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출자기업도 세우기로 했다. 신 총장은 "KAIST가 기술 현물을 20% 이상 출자하면 여기에 전문경영인이 현금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기술출자기업을 조성할 것"이라며 "학자는 연구를 하고 기업인이 경영을 맡는 체제여야 벤처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화 방안 또한 야심 차다. 신 총장은 학부 고학년 영어 강의를 확대하고 대학원 영어 강의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잉글리시 온리 존' 등 영어 전용 구역을 만들고 공식 행사에선 영어와 한국어를 같이 사용하는 등 '한·영 이중언어 구현 캠퍼스'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그는 "우리보다 출범이 20년가량 늦은 홍콩과학기술대가 지금 KAIST를 앞지른 것은 바로 영어 때문"이라며 "외국인 교수 비율을 현재 9%에서 15%, 외국 학생은 5%에서 1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대전 = 서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