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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LEADERSHIP

인터뷰 및 칼럼

[문화일보] “20년후 세상, 호모 사피엔스와 로봇 사피엔스가 절반씩 차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6.08 조회수3229

입력 :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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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 “20년후 세상, 호모 사피엔스와 로봇 사피엔스가 절반씩 차지”

신성철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이 지난 5일 대전 본원 총장실에서 미래 사회는 인간과 인공지능(AI)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신성철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이 지난 5일 대전 본원 총장실에서 미래 사회는 인간과 인공지능(AI)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전 = 신창섭 기자 bluesky@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

AI 자체는 우려할 대상 아냐
설계·개발자 가치관이 문제
과학자 윤리교육 갈수록 중요

交感·직관…AI가 대체 못해
인류만이 할수있는 일 집중땐
질좋은 일자리 메이커 될수도

AI는 4차 산업혁명시대 총아
초연결·초지능·융복합으로 가
3년 뒤 522억달러 시장 열것

“20년 후 세상은 호모 사피엔스(인류)와 로봇 사피엔스(AI 로봇)가 각각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신성철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이 내다본 미래다. 2년 전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을 연파할 때 놀라긴 했어도 이렇게 빨리 주변이 AI로 바뀔지 몰랐다. 자동차, 전자제품 등 거의 모든 사물에 AI가 적용되기 시작했고, 서로 연결돼 사람과 소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AI가 인간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프로 바둑 기사들이 둔 10만 개의 기보(棋譜)를 이용해 훈련을 시작했던 알파고의 업그레이드 버전 ‘알파고 제로’는 인간의 수(手)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됐다. 알파고가 ‘입신(入神)’했다면 알파고 제로는 ‘초인(超人)’의 경지에 도달한 셈이다.

예상 이상의 빠른 속도와 충격으로 AI가 생활에 파고들면서 새로운 테크노 시대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AI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카이스트가 한화시스템과 함께 ‘국방인공지능융합연구센터’를 개소하자, 전 세계 로봇 전공 교수 57명이 “킬러 로봇(Killer robots) 개발은 안 된다”며 카이스트와 공동 연구 보이콧을 선언한 해프닝도 이런 걱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AI가 인간으로부터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파괴자인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메이커인지에 대한 논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 AI 기술을 선도하는 카이스트의 신 총장은 “AI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가는 총아”라며 “AI는 인류에게 ‘테크노포비아’(Technophobia·첨단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암울한 세상)가 아니라 ‘테크노필리아’(Technophilia·첨단기술이 인류를 이롭게 만드는 세상)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총장은 “한 사람의 천재가 인류의 편익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지만, 세상을 망칠 수도 있다”며 “AI 시대일수록 과학자를 비롯한 연구자의 윤리와 가치관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 기억과 연산력, 체력 등 기능적인 면에서 인간은 AI 로봇을 따라갈 수 없다”며 “어렵고 힘든 반복적, 기능적 분야의 일자리는 AI 로봇이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총장은 “AI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한다 해도 100%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AI가 할 수 없는 감성적이고 따뜻한 일자리는 오히려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창조적인 일자리와 AI와 협업하는 일자리는 질 좋은 일자리로 대접받으며 더 늘어날 것이라고 신 총장은 전망했다.

신 총장은 “ABCDE 사회인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초연결, 초지능, 융·복합 시대”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2·3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져 있는 교육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BCDE 사회는 인공지능(A)과 빅데이터(B), 클라우드(C), 데이터(D), 에지 컴퓨터(E)가 활성화된 세상을 말한다.

지난 5일 대전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개교 47주년을 맞아 ‘카이스트 비전 2031’을 선포한 신 총장을 만나 AI를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모습과 이에 대비한 우리의 현재 상황, 개교 60주년(2031년)을 준비하는 카이스트의 교육 혁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개혁 등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 및 인재 양성 이야기 등을 들었다.

―AI 세상이라 할 정도로 AI가 급속도로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TV, 자동차, 냉장고, 전등 등 생활 전자제품에서부터 기업과 공장, 국방과 국가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AI가 접목되지 않은 영역이 없을 정도입니다. AI가 일상화됐다고 봐야지요. AI 로봇은 인간의 편익을 돕는 역할을 넘어 인간의 일자리까지 대체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로봇이 동거하는 시대를 대비해야 합니다. 20년 후 세상은 인간(호모 사피엔스)과 AI 로봇(로봇 사피엔스)이 각각 절반이 될 거라고 봅니다. AI 로봇과 함께 사는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요.

“AI 로봇은 인간보다 뛰어난 영역이 있지만, 인간이 하는 모든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AI는 암기력과 계산 능력이 인간보다 훨씬 낫고, 체력적인 문제도 없습니다. 기능적인 면에서도 AI 로봇은 골프를 칠 때마다 홀인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AI는 인간처럼 사랑하고 교감하며 창의력과 직관력, 지혜 등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어렵고 힘든 단순·반복적인 업무는 AI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AI로 인해 100% 없어지는 직업은 없을 겁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으로 택시 운전사가 사라질 수 있지만 따뜻한 감성을 가진 운전사는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큰 틀에서 보면 인간은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 AI가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하며 인류의 삶과 가치를 높이는 업무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AI는 일자리 파괴자가 아니라 질 좋은 새로운 일자리를 인간에게 제공하는 메이커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AI에 대한 불안감과 거부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생전에 ‘AI를 윤리적으로 설계해야 하고, AI 반란에 대비할 안전장치도 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건 AI 로봇 자체를 우려한 것이 아니라 AI 로봇을 연구하고 만드는 과학자와 연구자의 윤리와 가치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세상을 테크노필리아로 만들 수도, 반대로 테크노포비아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AI와 같은 첨단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일수록 윤리와 가치관 교육이 중요합니다. 카이스트가 윤리교육을 필수과목으로 두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 등에 따르면 AI와 자동화로 없어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기는 일자리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일자리의 16% 정도가 위험에 처한다. 그러나 독일의 자동차 회사 BMW나 부품 회사 보쉬 등은 AI와 자동화 도입 이후 생산성과 품질 향상으로 근로자가 더 늘어났다. 단순 기능직 일자리는 감소하지만, 창조적 일자리와 AI와 협업하는 일자리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카이스트도 윤리성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나요.

“지난 2월 정보기술(IT) 회사 한화시스템과 협력해 AI 기술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국방인공지능융합연구센터를 개소했습니다. 그런데 국내 한 영자신문이 센터를 영문으로 소개하면서 ‘AI 웨폰(Weapon)센터’로 번역하는 바람에 전 세계 로봇 전문교수 57명이 해명을 요구하며 해명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카이스트와 공동 연구를 보이콧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국방인공지능융합연구센터는 킬러 로봇이나 상용 또는 공격용 무기 개발과 전혀 상관이 없는 순수 연구기관입니다. 방위산업 관련 물류 시스템이나 무인 항법, 지능형 항공 훈련 시스템 등에 대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서 모두 설득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영자신문의 오역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신 총장은 “이번 사건을 통해 카이스트의 연구능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과 국방과 관련한 연구는 민감하게 다뤄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카이스트가 AI 윤리 문제를 선점해 국제적 이슈를 주도할 수 있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전화위복이 됐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AI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아무리 많은 빅데이터가 쌓여도 이를 빠르게 처리하는 AI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AI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가는 총아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3가지 메가 트렌드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초연결 사회입니다.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전 세계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완전히 연결돼 광속도로 소통할 것이고, 20년 후엔 전 세계가 사물인터넷(loT)으로 소통하며 국경과 시간 개념마저 초월한 사회가 도래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초지능 사회입니다. AI와 빅데이터가 가미된 클라우드 컴퓨팅이 보편화하면서 기존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봅니다. 마지막으로 융·복합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연결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새로운 발견과 발명은 융·복합을 통해 탄생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의 AI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지난해 기준으로 AI 시장 규모는 124억 달러이지만 3년 뒤인 2021년에는 52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엄청난 신시장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AI 기술 수준은 2016년 중국에 역전당할 정도로 역진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AI 기술 수준을 100(2017년)으로 봤을 때, 일본은 83.0, 중국은 81.9, 한국은 78.1 정도입니다. 특히 AI 전문 인력은 선진국 수준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카이스트 AI 연구인력은 178명이지만 중국의 비슷한 연구기관인 중국과학기술원은 1400명이 넘습니다. 중국은 1년에 6조 원씩 3년간 18조 원을 AI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AI 투자 규모는 중국 대비 3.9%에 불과합니다.”

지난 5월 15일 정부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AI 분야에 2조2000억 원을 투자하고, 6개 AI 대학원을 신설하기로 했다. 1400여 명의 AI 고급 인재와 5000여 명의 우수 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신 총장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라고 평했다.

―과학 인재 산실인 카이스트의 책임이 더 커진 것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카이스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중심 대학입니다. 카이스트 설립의 근거가 된 ‘터먼 보고서’ 마지막 장(미래에 대한 꿈)에 ‘2000년대의 카이스트는 국제적 명성의 대학, 교육의 선봉장, 국민의 자부심, 국가 발전의 초석이 되어 있을 것’이란 대목이 있습니다.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고, 국내 다른 대학과 연구소의 핵심 인력을 공급하는 것은 카이스트의 소명입니다. 카이스트가 산업화, 정보화 시대의 성공을 이끈 인재를 배출했듯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인재 양성도 카이스트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개교 60년이 되는 2031년 각종 세계 대학평가에서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글로벌 가치 창출을 선도하는 대학이 되기 위해 지난 3월 ‘카이스트 비전 2031’을 선포한 것도 국가적,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것입니다.”

1968년 미국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 지원 방식이 바뀌었다. 배고픔과 빈곤을 직접 해결하는 현물 중심 지원에서 교육 등 인프라 투자로 변한 것이다. 당시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 교수로 있던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후진국에서의 두뇌 유출을 막는 정책 수단’이란 논문을 통해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존 해나 처장으로부터 600만 달러 차관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 차관으로 한국의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을 설립할 계획안이 구체화됐다. 그의 나이 30세였다. 미국 USAID는 1970년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라 불리던 프레더릭 터먼 스탠퍼드대 교수를 책임자로 한 타당성 조사단을 한국에 파견해 이 사업계획안의 타당성을 검토해 달라고 의뢰했다. 이 조사단은 ‘한국과학원 설립에 관한 연구’라는 조사보고서를 제출했다. 이것이 ‘터먼 보고서’다. 신 총장이 지난해 취임해 1년간 준비한 ‘카이스트 비전 2031’은 ‘제2 터먼 보고서’로 불린다.

신 총장은 “카이스트는 1971년 개교 이후 1만2375명의 박사를 포함해 6만112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며 “국내 산학연 연구인력의 45%, 과학기술계 리더급 인사의 23%가 카이스트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2017년 말 기준 동문 창업 기업은 1456개로, 3만2000여 명을 고용하고, 연간 13조60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카이스트 비전 2031’을 소개해 주시죠.

“카이스트는 지난 47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지만, 세계 최정예 일류 대학과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양적 성과에 비해 질적 성과가 부족하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기존 문제 연구에 치중한 보신주의가 남아 있는 등 정체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개교 초기 충만했던 조직원의 사명감 역시 떨어지고 있습니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선도자(First mover)’가 필요하지만, 도전적인 문제를 발굴·정의·해결하는 ‘WHAT’보다 이미 정의된 문제를 연구하는 ‘HOW’에 치중한 풍토가 형성됐습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과학기술 혁신에 대응할 새로운 비전을 담아 제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카이스트 제2 도약을 위한 장기 계획과 액션 플랜을 담은 것이 카이스트 비전 2031입니다.”

신 총장은 “카이스트 비전 2031에는 인구, 환경, 빈곤 등 지구촌 난제를 해결하는 지식을 창출하고, 연구·기술개발·기술사업화를 선도해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위한 과학기술 혁신 대학을 추구한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며 “이를 위해 교육·연구·기술사업화·국제화·미래전략 등 5개 혁신 분야별로 5년씩 3단계 액션 방안을 마련해 놓았다”고 밝혔다. 신 총장은 비전 달성을 위해 ‘창의(Creatativity)’ ‘도전(Challenge)’ ‘배려(Caring)’ 등 3C를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제시했다.

“교육 혁신은 창의적 잠재력을 갖춘 인재 선발에서 시작됩니다. 창의적 인재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생 사이에서 나옵니다. 2017년 기준 16%와 22%에 불과한 일반고와 여학생 비율을 5년마다 5%씩 늘려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고, 이를 통해 고교 교육 정상화에도 기여할 계획입니다. 연구 혁신에선 하이퍼커넥션(지구촌이 인터넷의 월드와이드웹(WWW)이라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뜻) 포토닉스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 연구 등 미래 지향적 플래그십 연구에 전체 교수의 25% 이상이 참여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요.

“지금 제도권 교육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능과 방법을 외우고 습득하는 교육입니다. AI가 훨씬 잘하는 분야입니다. 4차 산업혁명 사회는 교육 지식을 공유하고 협업하는 시대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협업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에서부터 서열화를 탈피해야 합니다. 카이스트가 앞장서서 학생을 일률적으로 평가하고 줄 세우는 것을 끝내려 하고 있습니다. 교육도 팀프로젝트, 팀러닝, 프로젝트러닝으로, 또 토론 위주로 바꾸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학점에는 연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평화상을 제외한 다른 노벨상이 나오지 않고 있어 노벨상을 목표로 하는데, 그게 목표가 돼선 안 됩니다.”

신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으로 융·복합을 강조했다. 모든 사물이 연결된 초연결 사회인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선 전문지식보다 융합하는 기술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물리학을 공부할 때 생물이나 화학을 거의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물리학을 제대로 하려면 생물학, 화학은 물론 인문학까지 주변 다른 학문도 폭넓게 알아야 합니다. 학문적 배경이 다양할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발명할 수 있는 창의적 융합인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한 분야에 깊이 들어간다고 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상대방의 것을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카이스트가 융·복합 교육을 위해 자체 교재를 개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 세계 대학에서 카이스트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올해 영국 타임스고등교육(THE)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10위(서울대 9위)를 차지했고, 영국 QS(Quacquarelli Symonds) 아시아 대학평가에서는 4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THE 세계 대학평가에선 종합 95위에 그쳤습니다. 문제는 중화권 대학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순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THE 아시아 대학평가 1∼7위가 모두 중화권 대학이었고, QS 평가에서도 비중화권 대학 중 10위권에 든 대학은 카이스트가 유일합니다. 카이스트뿐 아니라 국내 대학 전체가 경쟁력 향상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대학에 집중 투자를 해오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 전 국가주석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21세기를 대비해 100개 대학을 집중 육성하는 ‘211공정’을 통해 6조5700억 원을 투자했고,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중국 재정 수입의 1%(연간 5조4000억 원)를 40여 개 대학에 투자하는 ‘985공정’을 실시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18조 원을 투입해 세계 일류 대학과 일류 학과를 건설하는 ‘쌍일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2015년 중국의 특허출원 건수는 110만 건에 달해 단일 국가 최초로 100만 건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국립대(NUS)는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으로 1년 예산이 2조 원에 달해 대부분 학생이 학비 지원을 받고 있으며 교수진 60%가 외국인일 정도로 전 세계에서 우수 학생과 교수를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이 이들 대학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이들 대학 총장을 만날 때마다 부러운 것이 있습니다. 이들은 재정 걱정과 두뇌 유출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랑합니다. 어떻게 해결했느냐고 물으면 같은 답이 돌아옵니다. 미국에서 받던 연봉을 맞춰 주고 연구소를 만들어 더 좋은 조건에서 연구하도록 해줬다는 겁니다. 우리도 선도하는 집단과 대학에 파격적인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한국 대학들이 국제적으로 치고 나갔지만, 지금은 중간에 걸려 있는 형국입니다. 국제적으로 선도하는 대학이 없습니다. 전 세계 3만 개 대학 중 100위권 대학에 한국 대학이 2곳 있는데, 한 곳이 카이스트입니다. 세계적 대학 반열에 오른 카이스트가 더 치고 나갈지, 여기서 멈출지는 정부의 투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카이스트 1년 예산 8000억 원 중 정부 지원은 2000억 원(25%)에 불과합니다. 싱가포르 국립대는 2조 원 예산 중 60%(1조2000억 원)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선도대학을 집중 지원해 키우면 나머지 대학은 자극을 받아 쫓아옵니다.”

―내년 카이스트 대전 본원에서 열리는 THE 혁신 대학 총장회의는 카이스트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THE 혁신 대학 총장회의가 카이스트에서 열리는 것 자체가 카이스트의 혁신성이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톰슨로이터 혁신 대학 평가에서 카이스트는 2016년과 2017년, 2018년 3년 연속 아시아 대학 중 1위를 차지했고, 세계 6위를 차지했습니다. 세계적인 대학평가기관인 THE 측은 내년 대회에서 ‘세계 혁신 대학’ 순위를 최초로 발표합니다. THE가 혁신 대학 랭킹을 대학평가에 새롭게 추가해 발표하는 것은 대학의 기술혁신과 사업화를 통한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아가는 세계적 흐름을 반영한 것입니다. 내년 혁신 대학 총장회의는 카이스트가 세계적인 혁신 대학으로 탄생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신 총장은 내년 혁신 대학 총장회의에 ‘킬러 로봇’ 문제를 제기한 토비 월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를 초청했다. AI 로봇에 대한 윤리성 문제를 공론화해 AI 사회의 윤리성 문제를 선점하겠다는 복안이다.

―연구·개발(R&D) 대신 연구·개발사업(R&DB)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창업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사회는 경제적으로 위험한 사회입니다. 첨단기술을 가진 중소 창업기업이 많아야 국가 경제가 튼튼해집니다. 이제까지 대학은 연구·개발에 몰두해 왔지만, 앞으로 대학은 비즈니스까지 해야 합니다. 카이스트가 지향하는 목표 중 하나가 기업가 대학입니다. 이공계 출신은 교수나 연구원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창업의 바다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인터뷰 = 유병권 전국부장
yb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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