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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LEADERSHIP

인터뷰 및 칼럼

[한국대학신문] [희망 대한민국] ㉓ 기정학(技政學) 시대, 세계 ‘일류’ 대학을 꿈꾸며 ‘초일류’ 대한민국을 열자

작성자 전체관리자 작성일 2021.11.01 조회수436

입력 : 2021-11-01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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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KAIST 총장

이광형 KAIST 총장
이광형 KAIST 총장

10월 21일, 일부 국가의 전유물로 여겼던 우주에 자력으로 첫발을 디뎠다.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II)다. 독자 기술로 만든 우주 발사체와 발사대로 누리호를 목표 고도 700km까지 진입시켰다. 탑재한 위성을 예정된 궤도에 올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이것은 작은 일로 보인다. 가장 어려운 1‧2‧3단 엔진 점화와 로켓 분리, 페어링과 모형 위성 분리까지 차질 없이 이뤄졌다.

성공은 이제 시간 문제다. 우리에겐 실패를 교훈 삼아 성공을 이끌어내는 DNA가 있다. 2013년 나로호 발사엔 두 차례의 실패가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반도체‧자동차‧원자력‧고속철‧전투기 기술을 개발할 당시에 연구자들이 겪은 실패담은 차고 넘친다. 귀동냥해서 배우고, 곁눈질해서 배우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심지어 훔쳐보며 배우면서 실패를 밥 먹듯 했지만, 결국 성공했다.

한국은 완전한 독자 기술로 1톤 이상의 위성을 자력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세계 7번째다. 1992년 ‘우리별’ 위성을 시작으로 우주 개발에 뛰어든 지 30년, ‘누리호’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한 지 12년 만이다. 로켓 기술은 최첨단 군사 기술이자 미래 기술에 직결되기 때문에 먼저 개발한 나라들이 철통같이 지키며 견제가 심하다. 이런 상황 속에 우주기술 최강국인 러시아에 비해 3%도 안되는 적은 인력으로 일군 쾌거에 전 세계는 놀라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기술패권 속에 순수 우리 힘만으로 일군 성과이기에 더욱더 값지다.

바야흐로 기술패권 시대다. 세계는 지금 산업기술 패권 다툼으로 뜨겁다. 미래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누리호를 쏘아 올린 우주기술을 비롯해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어느 하나 만만치 않다. 기술경쟁력 확보가 국가의 미래 경제를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큰 분야다. 미국과 중국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선제적으로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상대국 압박에 나섰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세계 주요 국가 간 복합적 대립양상으로 발전하며 현재 미‧EU, EU‧중국, 한일 갈등 등을 초래하고 있다.

이렇듯 현대의 국제관계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들어가고 있다. 20세기 초까지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무력으로 식민지를 약탈했고 20세기 중반에는 이념 기반의 세력 확장이 국제정치의 논리였다. 그러나 이념대결이 약화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경제적인 이익이 국제정치의 기본 관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이념에서 경제와 과학기술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특히 국가 산업과 경제 발전의 기반인 첨단기술이 패러다임 변화의 핵심이다.

과거에 지리적 위치가 중요한 ‘지정학(地政學)’에 의해 국제정치가 이뤄졌다면 21세기는 기술에 바탕을 둔 ‘기정학(技政學)’의 시대다.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서 동맹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국에 필요한 기술, 소재‧부품‧장비,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와 동맹을 맺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반도체‧배터리‧백신 기술 등 기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기술동맹으로 국가 간 글로벌 연합전선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올해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5G, 반도체 등에 관한 경제 협력을 약속했다. 5월 우리나라와는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의약품 등 첨단제품 생산에 있어 상호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과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한편 6월 G7 정상회의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을 발표했다. 미‧중 무역분쟁도 격화일로다.

기술을 장악하는 나라를 중심으로 미래 글로벌 패권이 재편될 것이 자명하다. 기정학(技政學) 시대, 대학이 무엇을 준비해야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다.

기술패권과 국가적 위기에 맞서 과학기술인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강화로 국내 산업계가 일대 혼돈에 빠졌을 때다. KAIST는 발 빠르게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단을 조직했다. 80여 개 중소‧중견기업에 100여 건의 맞춤형 자문을 제공했다. 자문단은 국내 소부장 산업의 자립을 넘어 소부장 강국의 길을 열고 있다.

KAIST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기 위해서도 나섰다. ‘코로나 대응 과학기술 뉴딜 사업단’을 출범해 K-방역에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했다. 세계 최초로 이동형 음압병동을 개발했다. 경기도 특별생활치료센터로 운영 중이다. 이동형 음압병동은 저예산으로 이동‧설치‧확장이 용이한 동시에 고급 의료 설비를 갖출 수 있는 음압격리시설이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무선충전 원천기술을 실증해 사업화에도 성공했다. KAIST와 대덕특구, 대전 도시철도역을 순환하는 무선충전 전기버스, 올레브(OLEV, On-Line Electric Vehicle)다. 별도의 전기선 없이 무선충전기가 매설된 도로 위를 달리며 대용량 전기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친환경 원천기술로 탄소중립 정책에 기여하고 새로운 교통 산업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

KAIST는 ‘최초’ 연구로 세계 ‘일류’ 대학을 꿈꾼다. “따라하기”로는 더 이상 세계 무대에서 승산이 없다는 분석이다. 연구실마다 이전에 없던 세계 최초의 연구를 시도하는 ‘1랩 1최초’, 새로운 기술을 사업화하는 ‘1랩1벤처’ 운동을 펼치는 이유다. ‘실패연구소’를 세워 실패를 ‘교훈을 얻은 성공’으로 재해석해 두려움 없이 ‘최초’에 도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기정학의 시대, 세계 고유 기술을 가지면 아무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한다. ‘최초’ 연구로 세계 일류 대학이 돼 우리 과학기술로 세계를 선도하면 대한민국은 분명 ‘초일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기업도 운동선수도 음악‧영화계에서도 다 일류가 있다. 이제 대학 차례다. 된다고 믿으면 이미 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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