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오늘은 우리 대학 48년 역사상 가장 이색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창의적인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들은 주어진 일과 연구과제 수행으로 늘 바쁜 일상을 보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조광현 연구처장을 중심으로 많은 분들의 협조를 통해 우리 대학 구성원들에게 궁극의 질문을 고민할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시상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올해 최우수상과 우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 27명을 포함한 수상자 모두에게 축하드립니다. 100일 동안 공모전을 멋지게 이끌어 온 조광현 연구처장과 보직교수님, 탁월하고 공정한 심사를 진행한 ‘궁극의 질문 위원회’ 12명의 교수님과 직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최우수상 11개 질문, 우수상 31개 질문, 최다질문상을 포함해 선정된 질문 목록을 보니 창의성과 상상력이 가득 담겨있어 향후 실제로 이루어지면 상당한 수준의 기술혁신은 물론 노벨과학상 배출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경이적인 경제성장 못지않게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반세기전에는 SCI(Science Citation Index) 논문과 외국특허가 전무했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매년 약 6만여 편의 SCI 논문을 발표해 세계 12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미국특허 등록건수는 약 2만여 건으로 세계 4위입니다.
그러나 과학발전을 보여주는 척도 중 하나인 노벨과학상은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술무역수지는 약 7조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과학기술 선진국에서 만든 문제와 답을 열심히 모방하고 추격하면서도 독자적으로 문제를 만들고 해결하려는 노력과 결과는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와 답을 만들어 내는 역량은 과학기술 후진국과 중진국 그리고 선진국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과학기술 후진국은 주어진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답조차 이해하지 못하며, 과학기술 중진국은 문제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답은 이해하고 모방하는 수준이고, 과학기술 선진국은 문제를 만들고 답도 만들어내는 역량을 갖춘 국가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과학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 대학은 이러한 사명을 선도적으로 감당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오늘 수상한 여러분들의 역할과 의무가 무척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KAIST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변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KAIST를 포함해 우리나라 과학기술 교육과 연구 풍토의 패러다임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첫째, 강의실에서 질문과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인구 당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이스라엘의 사례를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작년 한 언론매체가 주관한 특별대담에 참석해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와 대담을 나누었습니다. 상상력과 창의력 배양을 강조하는 이스라엘의 혁신비결을 설명하며 올메르트 전 총리는 “이스라엘에선 두 사람이 모이면 세 가지 이상의 의견이 나온다”고 소개하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들은 무슨 질문을 했는지부터 묻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대담을 통해 이스라엘을 과학 선진국으로 도약시킨 원동력이자 이스라엘 국민들이 갖춘 창의력의 근간은 토론과 질문을 즐기고 자신들의 의견을 뻔뻔스러울 정도로 당당히 말하는 ‘후츠파(Chutzpah) 정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학에서도 토론 중심의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온라인 강의와 오프라인 토론 중심의 수업방식을 결합한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은 현재 우리 대학 전체 강의의 약 20%에서 채택하고 있으며 2031년까지는 이 비율을 50%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강의실에서부터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더욱 활성화될 것입니다.
오늘 참석하신 교수님들께도 당부 드립니다. 만약 학생들이 도전적이고 엉뚱한 질문을 할 때는 무시하거나 야단치지 말고 격려해 주십시오. 인류의 위대한 발명과 발견은 모두 아이디어를 제안할 당시에는 엉뚱하거나 미친(Crazy) 생각이라고 치부되던 질문에서 시작되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학생들의 문제를 만드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과학자로서 문제를 만드는 능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역량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문제해결을 위해 1시간이 주어진다면 55분은 문제를 만들고 5분은 해결방법을 고민할 것(If I had an hour to solve a problem, I'd spend 55 minutes thinking about the problem and 5 minutes thinking about solutions)”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전공과목 강의를 담당하던 시절 고체물리 과목의 시험문제 5문항 중 1개는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내고 해답도 제시하게 했었습니다. 학생들의 문제를 만드는 능력을 함양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만드는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에 교수님들의 동참을 부탁드리며, 이를 위해 학기말 시험에서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질문을 만들어 풀 수 있도록 지도하는 방법을 활용하길 권하고 싶습니다.
문제를 만드는 능력이 새로운 기술 창출의 시작임을 증명하는 사례를 한 가지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국내 대기업의 전 세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은 약 95%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OLED는 30여 년 전 美 이스트만 코닥연구소(Eastman Kodak)의 연구원이었던 Ching W. Tang 박사의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왜 반도체만 발광소자로 사용되고 유기물에서는 발광현상을 관찰하지 못할까?”라는 그의 질문을 두고 당시 연구소에서 함께 재직하던 저와 동료들이 의견을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의 질문에 대해 대부분 비관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Tang 박사는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으며, 1987년 다층 유기박막을 발광소자로 제안한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이후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발전을 촉발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지금은 OLED의 창시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Tang 박사의 OLED 사례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던 시점에서는 실현가능성이 낮아 보이더라도 오랜 기간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궁극에는 좋은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최우수상을 수상한 “영구적인 저장 매체는 존재할까?”라는 질문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 평가하면 해답을 찾는 것이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언젠가는 실현될 수 있습니다. 우수상을 수상한 “정보 전송 속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라는 질문 역시 현재 정보처리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이론과 기술개발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연구는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에 도전하고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려는 교수님들을 대학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특이점 교수(Singularity Professor) 제도’의 도입을 준비 중입니다.
특이점 교수로 선정된 교원에게는 최소 10년, 길게는 20년간 매년 업적 평가를 하지 않고 일정한 연구비를 장기간 제공함으로써 창의적이고 도전적 아이디어와 질문을 구체화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셋째, 세계 최고(Best), 최초(First), 유일(Only)한 연구를 추구해야 합니다.
최근 한·일 무역전쟁을 통해 절실히 체감하고 있듯이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기술패권의 시대이자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만이 생존할 수 있는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의 시대임이 명확해 졌습니다. 따라서 세계 최고(Best), 최초(First), 유일(Only)한 B‧F‧O 연구만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교수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Best, First, Only 연구를 추구한다면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는 임팩트 있는 성과를 창출해 노벨과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질문과 엉뚱한 생각이 꽃을 피워 글로벌 과학기술 혁신과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성과로 이어지길 바라며 격려사를 마무리합니다.
연구처장님과 궁극의 질문 위원님들을 비롯해 궁극의 질문 공모전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멋진 시상식을 준비하는데 기여한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상을 받으신 여러분들의 앞날에 큰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9. 10. 17.
KAIST 총장 신 성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