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 사 말 >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경자년(庚子年) 흰쥐 해가 밝았습니다.
자랑스러운 KAIST 보직자들이 있어서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습니다.
연중 내내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저는 지난주 미국에서 개최된 ‘2020 International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 참석했습니다. 30여 년 전 처음 CES 행사장을 방문했을 당시 우리나라의 존재감은 미약했고 국내 기업들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었지만, 올해 두 번째로 방문한 CES 행사장에서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큰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첫 번째 변화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ICT 분야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선도자(Global first-mover)’로서의 우위를 확실히 점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30여 년 전 전자 산업계를 대표하던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의 기업들은 기존 사업영역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모빌리티(Mobility)’ 분야에서 신사업 창출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CES에서 목격한 국내 대기업들이 갖춘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에는 지난 반세기 고급 과학기술 인재양성과 연구개발을 수행해 온 KAIST의 역할과 기여가 자리 잡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삼성전자 등 우리나라의 주요 반도체 기업의 박사급 인력 25%가 KAIST 출신이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대표적인 CEO와 CTO가 모두 KAIST 졸업생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선도자의 위치를 확고히 하며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이를 뒷받침할 KAIST의 사명과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두 번째 변화는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약진입니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위한 전용관인 ‘유레카 파크(Eureka Park)’는 요소 기술과 차세대 기술의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국가별로는 프랑스가 가장 큰 규모의 스타트업 전시공간을 마련했으며 이스라엘도 자국 스타트업 홍보를 위해 규모 면에서 두 번째로 넓은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은 ‘대학혁신존(University Innovation Zone)’으로 불리는 구역에 부스를 마련했지만, KAIST는 작년부터 CES에 독립 부스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 CES 참여기업 4,500개 중 200개 기업에 수여된 ‘CES 혁신상(Innovation Award)’을 KAIST는 11개 창업기업 중 4개 기업이 수상하였습니다. KAIST가 개발한 기술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자랑스러운 사례입니다.
많은 CES 방문객들이 KAIST 부스를 찾아 전시된 첨단기술과 제품들을 확인했으며 그분들로부터 “KAIST는 역시 뭔가 다르다”라는 찬사를 받을 때면 총장으로서 큰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첨단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육성은 ‘기업가형 대학 (Entrepreneurial University)’을 지향하며 기술창업과 사업화를 확대·강화하고 있는 KAIST가 추구해야 할 혁신의 핵심적인 한 축입니다.
저는 총장으로 취임 후 ‘글로벌 가치창출 선도대학(Global Value-Creative Leading University)’을 새로운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수준의 학문적․기술적․경제적․사회적 가치창출을 추구하는 것이 KAIST에 주어진 새로운 시대적 사명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2019년도 학과 성과발표 Workshop’을 통해 KAIST의 미래 비전을 실현하고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는데 이바지한 학과별 성과를 공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른 학과들이 지난 1년간 창출한 성과의 내용을 함께 나누고 학과 상호 간 새로운 협업과 융합의 기회를 탐색하는 기회를 가져주십시오.
이번 Workshop이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학과 성과발표 총평 >
오늘 진행된 학과 성과발표와 행복을 주제로 마련된 강의를 모두 잘 들었습니다. 특히, KAIST의 세계대학 순위에 관해 탁월한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대학 평가 결과를 살펴보면 KAIST는 실제 보유하고 있는 역량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되어 있다는 염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세계대학 평가지표가 마련되지 않은 학과 중에는 실제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세계 선도 학과로 인정받을 탁월한 연구와 교육역량 갖춘 사례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KAIST가 머지않은 장래에 글로벌 10위권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여전히 만만하지 않은 도전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인내를 갖고 10~20년 앞을 바라보며 함께 노력한다면 학과 대부분이 글로벌 10위권 이내로 진입할 것이라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세계대학 평가에 대비할 뿐만 아니라 학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고려할 수 있는 몇 가지 제안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젊은 교수님들에게 글로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임팩트 있는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격려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글로벌 임팩트 있는 연구를 수행할 경우 탁월한 성과창출과 함께 소속 학과의 순위도 자연스럽게 상승할 것입니다.
다만, 학과와 대학의 글로벌 순위 향상을 위해 열심히 연구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노벨상 수상을 위해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고 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과 없는 집착과 조바심만을 강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단기간의 가시적인 성과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던 기존 접근방식을 지양하고 장기적이며 도전적 연구를 장려하는 파라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통해 ‘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에서 ‘Global first-mover, 글로벌 선도자’로 도약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대학평가에서 지속해서 최고의 결과를 받는 해외 대학의 사례를 참고하기를 권합니다.
세계 선도 대학의 교수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그들이 어떤 태도로 연구를 수행하는지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들 대학의 교수들은 현재 인기 있는 연구 분야가 아니라 현재는 ‘핫(hot)’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주제를 발굴해 연구하며 새로운 학문의 영역과 트랜드를 개척하는 일에 열정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세가 글로벌 선도 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대학사회에서 ‘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에 해당하는 대학들은 당대에 인기 있고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핫(hot)’한 분야의 연구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런 대학은 학문의 추세를 선도하지 못한 채 선진 연구자들을 쫓아만 가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님들 각자가 ‘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의 틀에서 벗어나 ‘Global first-mover, 글로벌 선도자’를 지향하는 파라다임의 변화(Paradigm Shift)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큰 흐름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중요하며 도전적인 과제를 발굴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학과의 모든 교수님이 산업계의 현장 문제 해결 등과 같이 시급성을 요구하는 연구주제와 거리를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학과별로 20%에서 많게는 약 1/3에 해당하는 교수님들이 현재에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향후 중요하게 다루어질 주제를 선제적으로 발굴해 연구하실 수 있도록 학과를 운영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러한 제안의 실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특이점 교수(Singularity Professor)’ 제도의 연내 도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른 시일 안에 제도의 세부 내용을 담은 공식발표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특이점 교수로 임용될 분들께는 최소 10년에서 최장 20년간 매년 교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과학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며 인류 난제를 해결할 도전적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최근 신임교원 임용 후보자들을 면접하면서 평생을 바쳐 도전하고 싶은 문제나 인류의 발전을 위해 창출하고 싶은 임팩트 있는 연구주제를 이미 고민하고 구체화한 젊은 연구자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이 특이점 교수 제도를 통해 연구비를 포함한 각종 지원을 제공하고 싶은 대상입니다.
특이점 교수로 선발된 분들은 장기적인 지원과 평가 부담 경감으로 인해 학문의 트렌드를 좇아가지 않고 중요한 문제를 발굴해 도전하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특이점 교수들은 새로운 학문 분야를 창출하거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글로벌 선도 학자들로 성장할 것이며, KAIST는 각각의 학문분야에서 ‘Global first-mover, 글로벌 선도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수행하는 ‘글로벌 가치창출 선도대학(Global Value-Creative Leading University)’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셋째, “KAIST는 그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는 외부의 평가가 주저함 없이 내려질 수 있도록 KAIST를 대표할 수 있는 학술과 연구 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저는 이를 위한 후보 분야 중 하나로 인공지능을 상정하고 KAIST 대표 연구 분야로 육성하기 위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AI 연구원(AI Institute)』의 설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번 ‘2020 International CES’의 참가를 통해서는 그간 고민하고 있던 『AI 연구원』의 혁신적 운영방안과 발전전략 등 전체적인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설정한 『AI 연구원』의 미래 모습은 ‘AI Center for Health’, ‘AI Center for Mobility’, ‘AI Center for Home Appliance’ 등 집단적이며 복합적인 인공지능 연구수행이 가능하도록 연구원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AI 연구원』이 운영된다면 현재와 같이 학과 단위의 구분에 따른 학과 상호 간 협업 추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AI Center for Mobility’에서는 인공지능 플랫폼 연구자와 기계공학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해 복합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제안한 내용을 인공지능 분야뿐 만 아니라 다른 연구 분야로도 확대·적용한다면 학과를 초월하는 학제 간 융합과 집단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며, 향후 10여 년간 협업의 경험과 지식을 성공적으로 축적한다면 해당 분야는 KAIST를 대표하는 플래그십(Flagship) 연구 분야로 자리 잡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관련된 내용을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함께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넷째, 융합기초학부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창의융합인재 양성을 위해 출범한 융합기초학부의 설립 취지와 목표에 대해서는 많은 분이 성원을 보내고 계시지만 학생들에게는 큰 관심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융합기초학부가 학생들에게 아직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본 과정의 명칭에 ‘기초’라는 용어가 포함됨으로써 학생들이 학부 4년의 기간 동안 기초과정만 이수하는 것은 아닌지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학생들이 기초융합학부 졸업 후에는 대학원 진로를 어떻게 설계할지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 학부 과정이 없는 대학원 중심 학과들이 융합기초학부 학생들에게 졸업 후 진로를 제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만간 학부 없는 대학원 중심 학과의 학과장님들과 관련 내용에 관한 논의를 추진하겠습니다.
다섯째,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분야의 연구를 위한 ‘Computer Facility Center’와 같은 독자적인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많은 예산이 소요될 수 있고 기존 인프라와의 차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학내 관련 교수님들을 중심으로 면밀한 검토와 논의를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작년 학과 성과발표 Workshop과 비교해 더욱 내실 있고 알찬 내용으로 행사를 준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세부 프로그램 역시 운영과 구성의 측면에서 이전과 비교해 많은 발전을 보여주었습니다.
KAIST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통찰력을 제공해 주셔서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은 일정도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Workshop 총평 >
여러분 모두 Workshop 기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틀 동안 다루어진 주제들에 대한 저의 생각과 제안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리더십 함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 두 분의 초청강연자 분들께서는 각각 지식과 지혜를 주제로 소중한 말씀을 전해주셨으며, 이를 통해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관한 통찰력 있는 식견을 제시하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강연 내용 중 한 가지는 “리더는 다시 만나고 싶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부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진정한 의미의 리더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1989년 KAIST에 부임한 후 10여 년이 지난 시점부터 리더십에 관해 고민하며 의견을 제시해왔습니다. 당시 과학기술계의 선배님들은 리더십을 학문적인 수월성의 유무로 판단하셨지만 저는 학문적 측면의 탁월함 못지않게 폭넓은 리더십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더십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에 걸친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가급적 이른 시기부터 리더의 자질을 깨닫고 이를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며 리더로서 겪어야 할 다양한 경험을 함께 습득한 경우에만 비로소 리더의 지혜를 갖출 수 있습니다.
제가 52세가 되었을 때 교수님들께서 저를 1순위로 총장 후보에 추천해 주셨습니다. 당시 총장으로 선출됐었다면 과학기술 지식 측면의 치열함만을 강조하는 총장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여러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저는 리더의 자질을 더욱 연마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지혜를 갖추고 따뜻함을 실천하는 총장이 되도록 항상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리더십 함양의 중요성은 대학교육 현장에서도 핵심적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제가 총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삼는 교육목표 중 하나는 리더십을 갖춘 인재양성입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학생들은 졸업 후 조직 적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기관장들은 KAIST 출신 인재들이 얼마나 많이 재직하고 있는지가 해당 기관의 경쟁력을 입증한다고 말하며 KAIST가 배출하는 인재의 영입에 적극적입니다. 실제로 KAIST 출신의 박사급 인력 비중이 약 50%에 이르는 기관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신입직원과 연구원 채용 과정에서 새롭게 도입되고 있는 인성 테스트를 통과하는 비율이 KAIST 출신 지원자들의 경우 다른 지원자들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는 소식을 접하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례가 KAIST 졸업생 모두에게 해당하지는 않겠지만 KAIST 출신 지원자를 바라보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전공 분야 지식의 보유 측면에서 우수한 자원이더라도 인성 등 전공 외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개선할 점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대학 차원에서 리더십 교육을 강화할 것이며 교수님들께서도 학생들이 학문적인 성장과 더불어 인성적인 측면의 성숙함을 함께 다질 수 있도록 세심한 지도와 관심을 기울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로, 학생들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도록 토대를 강화해야 합니다.
KAIST는 ‘글로벌 가치창출 선도대학(Global Value-Creative Leading University)’의 새로운 비전 아래 학생들을 글로벌 리더로 양성하기 위해 ‘리더십센터’를 ‘글로벌리더십센터’로 확대‧개편하는 등 다양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도적 뒷받침과 더불어 학생들은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계를 향하는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의 최근 사례와 같이 젊은이들이 국제무대로 진출하기보다는 축소 지향적인 자세로 국내에서 자족하려는 경향이 KAIST 학생들에게도 나타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일본과 유사한 사례의 방지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갖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며, 제가 총장으로 취임 후 영어 전용 기숙사의 도입을 추진했던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다만, 영어에 대한 자신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외국인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KAIST에서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규모는 92개국에서 온 약 700~800여 명에 이르며, 설문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캠퍼스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학생들이 공통적으로는 가진 애로사항 중 하나는 한국 학생들을 쉽게 사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KAIST 구성원 모두가 헌신과 열정을 갖고 변화를 추구하면서 이에 수반할 불편함은 감수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기반으로 외국인 교수와 학생 비율을 해외 선진대학 수준으로 높이고, 학생들이 세계시민으로서의 소양을 습득하도록 관련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유능한 외국인 학생에게 연구실 문호를 더욱 개방하는 등의 유의미한 변화가 실현된다면 캠퍼스 국제화를 포함해 학생들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는 한층 강화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KAIST의 높아진 위상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KAIST의 실제 위상은 세계대학 평가기관들이 제시하는 순위보다 월등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KAIST의 국내외적 위상이 급격히 높아짐에 따라 교직원, 동문, 학부모, 협력기관 대표 등이 자신과 KAIST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에 대한 자긍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사례가 부쩍 많아졌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반세기 전 산업화 태동기 때 가난을 탈출하려는 국민들에게 KAIST가 희망의 등불이 되었던 것과 같이 4차 산업혁명 기술패권 시대를 맞이하여 KAIST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대학으로 괄목하게 성장했습니다.
KAIST의 높아진 위상에 대한 인식은 주한 외국 대사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한 외국 대사 모임에서 오랜 기간 알고 지낸 대사 한 분이 저를 신임대사에게 소개하며 “Prof. Shin is the president of KAIST. KAIST is MIT in Korea”라고 말하자 함께 있던 다른 대사가 “You are wrong. MIT is KAIST in the United States”라고 말했던 일화는 KAIST의 국제적 인지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실감하게 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될 제50회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연차총회에 참석합니다.
이번 연차총회 기간 중에 저는 WEF의 27개 글로벌 선도대학 총장 모임인 ‘글로벌 대학 리더 포럼(Global University Leaders Forum, GULF)’에 회원대학 총장 자격으로 참석하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3년 연속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GULF 모임을 통해 선진대학 총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학의 미래혁신에 관해 당당하게 의견을 교환할 기회를 갖는다는 점은 KAIST의 세계적인 위상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저는 총장으로서 KAIST의 위상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른 책임감도 더욱 크게 실감하며 열정을 다해 총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학과의 발전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더 큰 책임감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하며 구성원들을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KAIST 발전을 위한 동문의 역할 확대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총장으로서 수행해야 할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KAIST 발전에 필요한 재원 확보를 위해 기부금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KAIST 동문이 설립한 5개의 유니콘(Unicorn) 기업을 포함해 여러 동문 창업기업들을 방문해 모교 발전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공을 일구어내신 동문 중 모교에 대한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거나 발전기금 출연에 매우 소극적이신 분들을 만나 뵐 때면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KAIST에 거액을 기부하신 분들 대부분은 KAIST와 연이 닿아있지 않은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공통으로 KAIST가 과학기술 교육과 연구를 통해 국가발전을 견인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기부를 결심하셨습니다. KAIST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가 얼마나 지대한지 증명하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동문 기부와는 달리, 그간 교류를 지속해오던 동문 중 유니콘 기업의 회장님 한 분이 내일 100억 원의 발전기금을 기부하실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 기금은 KAIST 50주년 기념관 건립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개교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KAIST를 상징할 기념관 건립을 준비하며 개념설계까지는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500억 원 상당의 재원 마련 등에 있어 누군가 마중물의 역할을 해 주면 좋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던 차에 그분께서 통 큰 기부를 통해 마중물의 역할을 자임하셨습니다.
이번 기부 덕분에 이른 시일 안에 기공식을 포함한 기념관 건립사업의 본격적인 추진이 가능해졌으며, 우리 자신의 힘으로 기념관 건물을 건립해서 후배들에게 교육의 장소로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로, 내부 평가를 교원인사제도에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원 인사제도 개선과 관련해 KAIST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 여부를 내부에서 결정하는 개선안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조교수로 임용 후 3년 동안 동료로서 함께 연구하고 교류하다 보면 교수로서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자질 측면에서 내부평가를 충분히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내부 평가만으로 승진 여부를 판단하는 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외부 전문가에 의존하는 대신 우리 대학 구성원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내부 평가를 수행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며 교무행정의 낭비적인 요소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부교수 이후의 승진심사 과정은 현행 제도를 유지함으로써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 시에는 외부 전문가의 평가의견을 반영하고 테뉴어(정년보장 영년직) 심사에는 해외 석학의 평가를 승진 여부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드린 주제들을 포함해 Workshop에서 다루어진 내용은 대부분의 경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이슈들입니다. 이번에는 논의에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개선책들이 마련되도록 이슈별 위원회 구성을 추진해 주십시오.
지난 3년간 저는 총장으로서의 직을 수행하면서 KAIST가 큰 잠재력과 저력을 갖춘 기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성원들이 뜻을 하나로 모아 공감대를 형성하고 목표를 설정한 후에는 일사불란하게 일을 추진하는 모습을 자주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로 『KAIST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단(KAIST Advisors on Materials & Parts, KAMP)』이 참여 교수님들의 헌신과 노력을 바탕으로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괄목할만한 성과를 창출할 것임을 작년 8월 자문단 출범 당시에는 쉽게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어려움을 겪게 된 중소·중견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문단의 신속한 출범과 성공적인 운영은 모두 KAIST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KAIST의 잠재력과 저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설정한다면 국제화, 교원인사제도개선 등을 포함해 다양한 혁신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1박 2일 동안 Workshop의 성공적인 운영과 참여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학과장님들을 포함해 참석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Workshop을 준비해 주신 조용훈 교무처장 이하 직원들에게 감사의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2020.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