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오늘 「글로벌전략연구소(Global Strategy Institute, GSI)」의 개소식을 갖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가적 비상사태의 극복 노력에 동참하고자 개소식은 내부 행사로 조촐하게 진행하고 대외 홍보도 자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개소식에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글로벌전략연구소」가 첫 발자국을 떼지만 향후 역할을 고려할 때 「글로벌전략연구소」의 설립은 우리 대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기관 차원에서 「글로벌전략연구소」는 우리 대학의 비전인 ‘글로벌 가치창출 선도대학(Global Value-Creative Leading University)’을 실현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혁신방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제안해야 합니다.
나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우리나라가 과거의 ‘빠른 추격자 전략(Fast Follower Strategy)’에서 탈피해 ‘선도자 전략 (First Mover Strategy)’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과 전략을 연구하고 제시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Thomas Frey)는 그의 저서 <미래와의 대화>에서 미래는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견해와 동일선상에 있는 “미래는 예측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은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공감의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선진국과 선진기관을 규정하는 핵심요소는 무엇입니까?
저는 미래의 모습을 먼저 만들어가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선진국이란 “미래를 먼저 만들어 가는 국가”로서 ‘Global Shaper’의 역할을 수행하고, 선진기관이란 “미래를 먼저 생각하여 앞서 나가는 기관”으로서 ‘Global Mover’의 역할을 수행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싱크탱크 그룹을 보유해야 합니다.
미국이 최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원동력 중 하나는 가장 많은 싱크탱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전 세계 6,500여 개의 싱크탱크 중 약 30%인 1,800여 개의 기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글로벌전략연구소」가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싱크탱크 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5년 후에 「글로벌전략연구소」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싱크탱크 그룹으로 성장하고 10년 후에는 국제적인 존재감(Visibility)을 갖춘 기관으로 도약한다면 문술미래전략대학원과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을 비롯해 국내·외 과학기술정책과 혁신전략 전공자들이 「글로벌전략연구소」를 가장 선호하는 근무처로 손꼽게 될 것입니다.
김정호 초대 연구소장님과 세 분의 센터장님께서 합심해 연구를 수행하고 교내 650여 명 교수님의 전문성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 다음 네 가지 원칙으로 「글로벌전략연구소」를 운영해 주길 당부드립니다.
첫째, 과학기술 기반 (Science & Technology-Based)의 전략연구를 추진함으로써 객관적인 데이터와 과학적인 분석 기법을 활용하고 이를 통해 합리적이며 예측 가능성이 높은 미래전략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글로벌 관점(Global Perspective)에서 미래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제가 연구소의 명칭에 ‘글로벌’을 명시한 이유도 우리 대학과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한 글로벌 관점의 전략 수립을 염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계경제포럼(WEF)과 함께 설치한 「한국4차산업혁명정책센터(KPC4IR)」가 연구소의 핵심 조직 중 하나로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4차산업혁명정책센터」가 세계경제포럼과 글로벌 혁신전략을 공동으로 설계하는 것처럼 「글로벌전략연구소」는 출범 초기부터 글로벌 선도 싱크탱크 그룹과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들 기관에 「글로벌전략연구소」의 소개 서신을 공식적으로 발송하는 방안을 포함해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추진하시길 함께 당부드립니다.
셋째,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저는 “과학기술에는 여야(與野)가 없고 국가만 있을 뿐이다”라는 지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전략연구 수행에 있어 과학기술 외적인 이념과 정파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넷째. 정권을 초월한 장기적인 전략(Long-term Strategy)을 제시해야 합니다.
과학기술 분야의 국가 최상위 종합계획인 ‘과학기술기본계획’이 5년 단위로 시행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혁신전략이 부재한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됩니다. 실제로 여러 정책 전문가들은 그간 과학기술 혁신전략의 수립과 추진이 정권 교체를 기점으로 매번 단절되거나 큰 변화를 겪어 왔음을 문제점으로 지적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2025년을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비전’, 10대 성장엔진을 중심으로 한 노무현 정부의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육성정책’,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등은 실제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대부분 축소되거나 국민의 관심에서 잊히고 새로운 전략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는 싱크탱크의 제안이 행정부의 변화와 무관하게 국가전략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과학한림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 NAS)의 2005년 보고서는 ‘미국 경쟁력 강화 계획(American Competitiveness Initiative, ACI)’의 수립과 ‘미국경쟁력 강화법(America COMPETES Act)’ 제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들 계획과 법안이 부시 행정부를 거쳐서 오바마 행정부에서까지 동일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며 지속적으로 국가핵심전략으로 기능했다는 것입니다.
지속가능하며 장기적인 전략의 부재라는 국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글로벌전략연구소」는 정권의 변화를 관통할 수 있는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전략을 연구하고 제시해야 합니다. 또한 장기 전략이 채택된 이후에는 시대상의 변화를 반영한 연동화 작업을 통해 전략의 수정, 보완을 병행해 주십시오.
장기적인 전략의 도출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연구 환경의 조성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연구소장님과 센터장님의 임기를 총장의 임기와 연동하지 않고 3년으로 인사발령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또한 여러분 모두가 설립멤버로서 자긍심을 갖고 연구에 매진하며 은퇴하신 후에도 「글로벌전략연구소」에서의 근무를 자랑스러워하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微弱)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昌大)하리라(성경 욥기 8:7)” 성구처럼 오늘 출범하는「글로벌전략연구소」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반세기 후에는 창대하길 기원하며 축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 2. 27.
KAIST 총장 신 성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