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KAIST 총장 신성철입니다.
오늘 귀한 모임에 초청해 주신 ‘코리아씨이오서밋’의 박봉규 이사장님께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평소 존경하는 분들을 뵐 수 있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명 前 과학기술부총리님은 제 대선배이시자,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과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선각자이시며, 우리 사회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신 존경하는 분으로서, 이곳에서 만나 뵙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장준규 前 육군참모총장님, 김화동 前 한국조폐공사 사장님, 주영섭 前 중소기업청장님 등을 비롯해 여러 지인분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반갑습니다.
과학기술계를 비롯해 사회·경제 주요 분야를 대표하는 리더이며, 국가 발전에도 큰 관심을 갖고 계신 여러분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전과 혁신을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선도국보다 50년 내지 100년가량 늦게 1차, 2차, 3차 산업혁명 시기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추격자(Fast-Follower)’ 전략을 통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에 반해, 인류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그간의 추격 전략이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도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도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혁신적인 전략을 마련해 선제적으로 구사한다면 4차 산업혁명은 대한민국이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에, 오늘 저는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혁신전략이 필요한가?’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를 처음 제시했습니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은 인류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겪은 이후 역사학자들이 규정한 시대적 구분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은 변혁의 시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이전에 예측되었다는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을 선제적으로 규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가진 세상의 변화에 대한 통찰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클라우스 슈밥 회장과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그의 장점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에 매년 3,000여 명의 전 세계 리더들이 모이는 이유도 미래의 변화를 꿰뚫어 보는 클라우스 슈밥 회장의 통찰력 때문이며, 2016년에 그가 미래를 통찰하며 인류사회에 던진 변화의 핵심이 바로 ‘4차 산업혁명’입니다.
지난 250여 년간 진행된 세 차례의 산업혁명 시기마다 각 혁명을 촉발한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명과 발견이 있었으며, 이와 연관된 새로운 산업의 등장으로 인류 사회는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발명한 새로운 방식의 증기기관 기술에 기반을 두었으며, 철도와 기계 산업의 등장으로 인류 사회는 기계화 혁명을 맞이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2차 산업혁명은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가 발견한 전자기 유도 법칙을 기반으로 전기의 상용화를 본격화했고, 화학과 정유 및 통신 분야의 산업을 일으키며 대량생산 혁명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3차 산업혁명은 전자공학(Electronics)이 대두되며 가속화되었고, 컴퓨터와 인터넷 등 정보통신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며 디지털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21세기에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촉발 원인은 AI(인공지능), Big Data(빅데이터), Cloud(클라우드)를 의미하는 ‘A·B·C’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AI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등이 핵심 산업이 될 것이며, 향후 인류 사회에는 ‘Smart New World’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쓰나미처럼 밀려온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쓰나미’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관해서 확실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를 목도하면서 이러한 쓰나미의 실체는 ‘기술패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바로 작년 일본의 수출규제로 격화된 한·일 무역분쟁이었습니다.
2019년 7월 일본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를 위한 3개 핵심소재에 대해 수출규제를 단행하고, 이어 8월에는 대한민국을 White List에서 제외했습니다. 결국 1,200여 개에 달하는 품목이 수출규제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소재, 부품, 장비 분야의 기술적 취약함이 노출되었고, 국가 전체적으로 큰 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무역전쟁의 본질도 기술패권 다툼입니다. 이러한 기술패권의 쓰나미를 견디지 못하는 기업이나 조직, 그리고 국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 중 하나는 ‘승자독식(Winner takes it all.)’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D램 반도체의 경우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 기업 두 곳이 차지하는 세계시장 점유율은 약 74%에 달합니다. 이에 반해, 파운드리(Foundry)의 경우에는 대만의 TSMC가 50%의 글로벌 시장을 점유하고 있고, 드론은 중국의 DJI가 7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4차 산업혁명 시대는 1등이나 2등의 기술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는 ‘승자독식’의 시기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특징은 ‘글로벌 공급 사슬’을 기반으로 한 제조혁신입니다.
기업의 경쟁력 제고 측면에서는 한 회사가 완제품 제조에 필요한 모든 부품을 독자적으로 생산하는 방식보다는, ‘글로벌 공급 사슬’을 활용해 전 세계의 여러 기업으로부터 다양한 부품을 적시에 공급받는 전략이 더욱 유효합니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품목을 개발하고 제조하여 ‘글로벌 공급 사슬’을 통해 전 세계에 공급한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기술 패권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국방·안보, 외교·통상, 복리후생 등 국가의 생존과 번영 및 안전과 복지가 모두 과학기술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코로나19의 경우만 보더라도, 감염병 예방과 진단 및 치료를 위한 바이오의료 기술의 혁신이 없이는 국가적 위기 극복이 요원(遙遠)할 수밖에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메가트렌드를 나타내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초연결(Hyperconnectivity)’입니다.
전 세계 인류의 약 절반은 모바일 디바이스나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 1인당 1개의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스마트 디바이스는 IoT(Internet of Things)를 통해 연결되어 있습니다. 2020년 현재 약 500억 개의 IoT가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30년 후면 모든 디바이스가 IoT로 연결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현실화하면 전 세계 인류와 전자기기가 모두 광속도로 연결되어 정보를 교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초연결(Hyperconnectivity)’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이버 공간(Cyber World)’과 ‘물리 공간(Physical World)’이 융합된 ‘CPS(Cyber-Physical System)’가 전개될 것입니다. CPS를 통해 인류는 물리 공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사이버 세계에서 감지하고 분석하며 조정할 뿐만 아니라, 물리 공간의 현실을 사이버 공간에서 똑같이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구축해 활용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입니다.
AI가 이렇게 급속히 발전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1950년대 말 AI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후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의 정교화 및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의 등장과 더불어 컴퓨터 하드웨어 성능의 향상, 빅데이터 분석의 고도화, 뇌과학의 발전 등으로 인해 AI 기술이 급속히 발전한 것입니다.
AI가 인류 사회에 처음 그 위력을 선보인 계기는 Google의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와 세계적인 바둑기사들과의 대국이었습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알파고가 인간을 상대로 완승을 하면서 바둑에서는 AI가 인간지능을 초월하는 세상이 도래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바둑 AI 프로그램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AI 바둑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며, 인간 바둑기사와 AI가 복식조를 이루어 경기를 치르기도 합니다.
향후 AI의 발전에 관해 저명한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그의 저서「The Singularity Is Near(특이점이 온다)」에서 2045년 무렵에 AI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소위 ‘특이점(Singularity Point)’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러한 예측을 둘러싸고 논쟁도 분분합니다. 제가 세계적인 AI 대가들과 의견을 교환해 보면, 특이점의 도래 시점을 2045년보다 빠를 것으로 예상한 분도 있고, 향후 300년 이내에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AI의 등장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의 이러한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AI가 미래 인류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가져올 기술로써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기계 지능화는 AI의 활용이 기대되는 대표 분야이자 로봇의 발전을 견인하는 핵심 기술 영역입니다.
저는 AI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에 따라 인간과 AI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측하면서 ‘로보 사피엔스(Robo sapiens)’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와 대비되는 ‘로보 사피엔스’는 언론에서도 주목해 다룬 새로운 용어입니다.
기계 지능화의 사례 중 하나는 대화형 AI 기술을 탑재한 로봇의 등장입니다. 홍콩의 Hanson Robotics가 개발한 대화형 로봇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선보였던 ‘소피아(Sophia)’는 초기 간단한 대화의 수준을 넘어 인간과 상호작용의 범위를 계속 확대하고 있습니다. 특정 주제에 관해 인간과 토론을 벌이는 AI 대화 시스템인 IBM의 ‘프로젝트 디베이터(Project Debater)’는 인간과 매우 자연스럽게 의견을 교환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예를 들어 ‘기후온난화’에 대해 토론할 때 상대방이 토론의 주도권을 잃고 다급하게 말하면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이야기해라”는 농담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스포츠 분야에서 AI 로봇의 활약도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2016년 PGA 이벤트에서 AI 로봇 골퍼는 파3홀에서 홀인원을 했습니다. 앞으로 AI 로봇 골퍼는 지형, 바람, 힘의 강약 등 종합적인 정보를 완벽하게 파악해 18홀을 단지 18번의 스윙만으로 끝낼 것입니다. 또한, Boston Dynamics에서 개발한 AI 로봇은 체조선수의 동작을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360도로 텀블링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AI 택배의 시대도 곧 현실화할 것입니다. 물류창고에서 택배를 분류하는 AI 로봇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지만 근로자의 실직을 야기하는 위협으로까지는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생속도를 빠르게 한 영상의 후반부처럼, AI 로봇이 인간이 따라 하지 못할 속도로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때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경계가 무너진다는 위기감을 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초융합(Meta-Convergence)’입니다.
이제는 학제간 융·복합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나노(Nano), 생명(Bio), 정보(Information),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의 네 가지 분야를 융합한 NBIC와 같은 학문간 경계를 허무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발명과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1차와 2차 산업혁명은 물리(Physical) 시스템을, 3차 산업혁명은 사이버(Cyber) 시스템을 중심으로 각각 전개되었던 반면, 4차 산업혁명은 물리와 사이버 시스템은 물론 생물학적(Biological) 시스템까지 융합한 체계를 기반으로 추진될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4차 산업혁명 메가트랜드를 기반으로 ‘Smart Car’, ‘Smart Security’, ‘Smart Grid’ 등 기존 산업에 AI와 ICT를 융합한 ‘Smart Industry’가 경제발전을 선도할 것입니다.

자율주행차도 자동차에 AI와 ICT 기술을 융합한 스마트화의 대표 사례입니다.
이번 슬라이드에서 소개한 볼보 360c 콘셉트카는 자율주행기술을 적용해 이동 오피스의 기능은 물론 먼 거리를 편안히 여행할 수 있는 이동 호텔의 기능까지 수행하도록 디자인되었으며, 약 10년 후에는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코로나19로 전 세계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인류는 전례없이 큰 충격과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비대면 사회(Untact Society)’로, 경제를 디지털 ‘온라인 경제(Online Economy)’로, 그리고 세계화를 ‘보호주의(Protectionism)’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세계 역사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 B.C.)과 이후로(After Corona, A.C.) 구분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년 중·후반 코로나19 위기가 어느 정도 종식되더라도 4~5년 후에는 새로운 변종 코로나가 창궐할 수 있다는 전망을 반영한다면, 코로나 이후의 역사는 ‘After Corona’ 대신 ‘With Corona’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비대면 방식에 기반한 사회·경제 체계의 구축이 향후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며,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초연결화’가 될 것입니다. 또한, 코로나19 대응 연구개발을 위해 ‘초융복화’ 및 ‘초지능화’가 강화될 것입니다. 결국, 코로나19는 앞서 제시했던 4차 산업혁명의 세 가지 메가트랜드를 가속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과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패권의 쓰나미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로 인해 극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위기 극복의 DNA’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Impossible)’라고 얘기할 때 우리는 ‘가능하다(I’m possible)’라고 말할 수 있는 민족입니다. 산업 분야에서 이를 증명하는 세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는 1974년에 반도체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당시 일본 전자회사 후지쯔의 회장이 “후진국에서 무슨 첨단 반도체 산업을 겁 없이 하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세계 D램 반도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NEC, 히타치, 미쓰비시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일본 회사인 엘피다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결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인수되었습니다.
현대의 엑셀 자동차가 미국에 처음 수출된 해가 1986년입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일회용 차, 붙어 있는 것은 다 떨어지는 차”라며 현대(HYUNDAI)의 영어 이니셜을 이용해 “Hope You Understand Nothing’s Drivable And Inexpensive”, 즉 “운전이 가능하면서 싼 것은 없다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세계 시장 점유율 5위를 차지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일본 도요타의 판매량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OLED 디스플레이 시장에 진출한 2000년 당시,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는 “OLED 상용화는 물구나무를 서서 후지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라며 시장진출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의 42.7%를 점유하고 있고, OLED의 경우 국내 두 기업이 세계 시장의 76%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가 ‘ICT 및 인프라 최강국’이라는 것입니다.
우선, 이러한 측면은 오늘 함께하신 오명 前 과학기술부총리님께서 2000년대에 ICT 기반의 국가 혁신을 위한 탁월한 정책 리더십을 발휘하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ICT 세계시장 점유율은 1, 2위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 최고의 인터넷 속도를 갖추었으며, 세계 최고의 모바일 사용자 비율을 자랑합니다.
이러한 강점을 직접 피부로 느낀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개최된 ‘2020 국제전자제품박람회(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 CES 2020)’입니다. 지금 보고 계신 동영상은 관람객들이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제품을 보기 위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던 한국관의 모습으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발전을 거듭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20년 만에 다시 찾은 올해 CES 행사장에서 저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하며 한국인으로서 큰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내년 CES는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이지만, 향후 기회가 되신다면 이 행사에 참여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첨단과학기술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우리나라 기업들의 세계적인 기술경쟁력과 ICT 최강국인 대한민국의 위상에 대해 자긍심을 얻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가 ‘미래 생산 경쟁력’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세계경제포럼(WEF)은 전 세계 국가들의 미래 생산 경쟁력을 평가했으며, 저도 WEF의 위원으로 이 작업에 참여했었습니다. WEF는 미래 생산 경쟁력을 가진 대표적인 국가로 독일, 일본과 함께 우리나라를 선정했습니다.
딜로이트(Deloitte)도 이미 4년 전에 우리나라의 제조업 경쟁력을 세계 5위로 평가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진단키트에 대한 주문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진단키트 기업들이 이러한 요청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세 가지 이유로 인해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패권을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지금부터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한 과학기술 혁신전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글로벌 선도 연구개발’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양적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SCI 논문 수에서 세계 12위, 미국 내 특허출원 세계 4위, 국제특허출원 세계 5위의 국가입니다.
하지만, 연구성과의 질적 우수성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 분야가 그리 많지 않으며, 기술무역수지는 0.7로 연간 약 4조 원의 기술수입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추격형 연구’를 수행해왔기 때문입니다. ‘추격형 연구’란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나 경제적인 가치 창출 효과가 많지 않은 어중간한 중간영역의 연구를 의미하며, 저는 이를 ‘역U자형 연구’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형태의 연구가 ‘선도형 연구’로 전환되려면 신지식을 창출하거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양극단의 ‘U자형 연구’를 강화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Best One, First One, Only One의 ‘B·F·O’ 연구를 지향해야 합니다. 연구개발 투자의 경우에도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며,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은 ‘B·F·O’ 연구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세계 ‘최고(Best)’이거나, ‘최초(First)’이거나, ‘유일한(Only)’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낮은 성공률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선도적인 ‘B·F·O’ 연구의 활성화를 위한 선결과제 중 하나로 ‘도전적인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며, 이를 기반으로 과학기술 연구자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둘째,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간 우리 정부는 연구개발 투자를 꾸준히 증가시켜왔습니다. 그 결과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4.53%로 세계에서 제일 높습니다. 하지만 국가별 총 연구개발비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의 약 6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연구원의 수를 기준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에 비해 약 4분의 1 수준이며, 일본에 비해서도 3분의 2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개발 투자액 및 연구인력 등 절대적인 규모 측면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 등 경쟁국과 비교해 열세에 놓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채택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략을 시행하려면 ‘산업의 글로벌 시장 규모’ 및 ‘국내외 연구개발 수준’과 ‘연구개발 우수 전문인력의 확보 가능성’ 등을 면밀히 고려해 교집합에 해당하는 영역을 전략적으로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셋째, ‘AI 인재 양성’을 확대해야 합니다.
AI는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되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으며, 과학기술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심화·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물질의 창출이나 DNA 분석 등 과학기술 연구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도와주는 IBM의 왓슨과 같은 의료 AI, 판례를 분석하는 AI 변호사,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분석해 그림을 그리는 로봇 화가, 금융 투자 자문을 제공하는 로보 어드바이저 등 AI는 이미 다양한 전문영역에서 조력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작년 7월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접견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집중해야 할 분야를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AI)”이라고 강조했던 이유도 이와 같은 AI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AI 현황을 선도국과 비교하면 경쟁력 측면에서 열세를 보입니다.
지난 10년간 국가별 AI 특허 보유 건수를 살펴보면, 미국은 4만 7천여 건이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의 9.3%인 4천여 건에 불과합니다.
국가별 AI 전문가 수를 살펴보면 미국은 1만 2천여 명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1.4%인 168명만이 활동하고 있어 큰 격차를 보입니다. 여기서 언급한 AI 전문가는 국제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거나 국제특허를 출원‧등록할 수 있는 수준을 가진 연구자를 지칭합니다.
결국, 양적으로는 미국이나 중국 등 AI 선도국과 직접적인 경쟁이 어려우므로, 이러한 상황의 타개를 위해서는 질적으로 우수한 AI 인력양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AI 전문인력 양성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KAIST도 우수한 AI 인재 양성을 위해 기관 차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대표 사례를 소개해 드리면, 첫째, 작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시행한 AI대학원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AI대학원’을 국내 최초로 설립했습니다.
AI 기술력의 확보 및 우수한 인재의 양성 측면에서 제가 어느 정도 희망을 갖는 이유는 KAIST가 아시아에서 1~2위를 다투는 AI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적으로는 10위권의 수준을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AI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교원의 확보가 필요합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구글(Google)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 해외의 대표적인 기업에서 재직하던 연구원을 교수로 임용했습니다.
이들을 신임 교원으로 유치하는 과정에서 연봉 격차로 인해 임용 협상이 쉽지 않았었기 때문에, 향후 우수 교원의 지속적인 확보를 위해 기업과 대학에서 겸직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신임 교원은 기업과 대학에서 각각 절반씩 근무하고, 연봉은 기업에서 지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 지난 9월에는 서울시 및 금융위원회의 재정지원으로 KAIST 경영대학 산하에 ‘디지털금융전문대학원’을 출범했습니다.
AI와 빅데이터 지식을 겸비한 금융인력 양성을 목표하고 있으며, 본 대학원이 개설한 학위 과정인 ‘디지털금융MBA’의 신입생 40명을 모집하는 전형에는 560여 명이 지원하며 높은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선발된 학생들은 모두 탁월한 인재들이기 때문에 글로벌 디지털금융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대한민국의 목표를 실현하는 전문가로 성장할 것입니다.

KAIST는 다양한 AI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AI를 활용한 사회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사실과 거짓 정보를 구분하는 가짜뉴스 탐지 연구를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으며, 자율주행차와 드론 기술의 연구개발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의료영상 판독 전문가보다 17% 향상된 진단 정확성을 보이는 AI 기반 코로나19 영상진단 기술을 개발해 병원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넷째, ‘바이오의료 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바이오의료 분야는 매우 중요한 산업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전망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이 관련 시장을 점유하고 있어 우리에게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은 분야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방역을 통해 보건의료 모범국가로 부상한 우리나라는 바이오의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수출하거나 치료제의 개발을 선도하는 기업의 대표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해외의 시각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는 코로나19 위기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말처럼 바이오의료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낭비해서는 안 되는 ‘좋은 위기(Good Crisis)’임을 확신합니다.
바이오의료 분야의 세계 시장 규모는 약 1,800조 원이며, 이는 반도체와 자동차 시장을 합친 것보다 훨씬 큰 규모입니다. 따라서,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던 대한민국이 바이오의료 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육성한다면 상당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적인 이슈가 발생하면 많은 분이 ‘KAIST가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기대를 표명합니다. 코로나19 위기 초기에는 병원과 의대가 없는 KAIST가 국가적인 감염병 위기 극복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관해 다소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의료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자와 공학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국가 차원의 한국형 뉴딜 사업이 착수되기 이전인 지난 4월에 ‘코로나 대응 과학기술 뉴딜사업’을 정부에 처음 제안하여 40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KAIST 교수 44명을 포함해 120여 명의 산·학·연·병원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코로나19 감염의 예방, 진단, 보호, 치료의 단계별로 적용할 전방위적인 의료기술 개발을 수행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항바이러스 산업을 선도하고 인류 사회의 건강권 증진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핵심 기술 중 하나가 ‘이동 확장형 음압병동’입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음압병동을 확보하지 못한 지역에서 이동형 음압병동을 2시간 이내에 설치해 운영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으며, 해외로도 이 기술을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추세라면 3년 후에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2050년경이 되면 총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44%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만성질환의 발생 등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증가할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려면 생체기능 활성화를 위한 바이오의료 소재의 개발과 같은 기술혁신을 통해 ‘건강노화 사회’를 구현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이오의료 혁신을 위해서는 과학기술계와 의료계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이에, KAIST는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국내 주요 병원과 MOU를 체결하는 등 과학기술계와 의료계의 협력을 더욱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Digital Data 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 D·N·A 중 하나인 데이터(Data)는 AI와 결합해 ‘디지털 지능(Digital Intelligence)’을 구성하며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요소입니다. 이미 데이터는 제품과 서비스의 홍보 및 판매를 위해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경우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한 고객 맞춤형 콘텐츠 추천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마존(Amazon), 중국의 알리바바(Alibaba)와 같은 전자상거래(E-Commerce) 기업들도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해 매출 증대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네이버쇼핑, 쿠팡 등 전자상거래 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여섯째, ‘AI 기반 제조혁신’을 위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경우 제조 과정에서 확보한 빅데이터를 제조 경쟁력 강화에 활용하기 위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AIST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으로 ‘인공지능 중소벤처 제조 플랫폼(KAMP)’을 구축하고 이번 달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KAMP는 중소기업의 빅데이터를 인공지능화해서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고, ‘제품 시뮬레이션(Product Simulation)’을 통해 설계를 자동화하며,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구축해 최적의 공정이 이루어지도록 제어하는 한편, ‘머신 비전(Machine Vision)’ 기술을 적용해 품질을 예측하는 등 제조업에 특화된 AI와 빅데이터 기반의 지능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님께서도 참석하신 가운데 12월 14일 개최될 KAMP 서비스 오픈식은 ‘한국 인공지능 제조 이니셔티브(KAMP.AI)’ 출범식을 겸해 진행될 예정이며, 오늘 강연에 참여하신 여러분 중에 제조업 분야를 담당하고 계신 분들은 이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일곱째, ‘소재 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을 추진해야 합니다.
첨단산업에서 소재의 비중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ICT 산업에서 소재 기여율은 70%에 달하며, 3D 프린팅 산업의 경우 프린터 장비의 글로벌 시장은 약 19억 달러 규모지만 3D 프린팅에 활용되는 소재의 시장 규모는 26억 달러에 이릅니다. 제조업에서 장비 기술의 혁신도 필요하지만, 3D 프린팅 산업의 경우와 같이 소재의 비중과 중요성은 향후 더욱 부각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소재 산업의 육성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었으며, 중국과 일본 등 소재 강국의 사이에서 ‘신(新) 넛크래커(Nut-cracker)’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견줄만한 세계적인 첨단 소재 경쟁력을 보유하지 못했고, 기술력을 보완하며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중국에 비해서도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열세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의 자체 조달률은 약 65%입니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에서 이 비율은 더욱 저조하여, 반도체는 약 27%이며 디스플레이는 약 45%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작년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무역규제 조치를 발표했을 때 산업계를 포함해 국가적으로 큰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KAIST는 교육과 연구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측면에서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돌파구를 마련하는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지론이었습니다.
이에, 작년 8월 2일 일본이 White List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한다는 조치를 발표하고 1,200여 개의 품목이 수출규제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직후에는 국난(國難)으로 여겨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앞장서기 위해 당일 오후에 ‘KAIST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단’ 출범을 결정했습니다.
토요일이었던 8월 3일에는 제가 직접 전체 교수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번 국난의 극복에 KAIST가 앞장서야 한다”라고 설득했으며, 150여 명의 전·현직 교수님들이 “우리가 기업을 도와야 한다”라고 호응해주셨습니다. 이러한 반응을 접하며 저는 “KAIST가 국가에서 지원을 받은 기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지체없이 자문단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기업들의 큰 호응 속에 운영되고 있는 ‘KAIST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단’은 당시 뉴스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것처럼 기업 현장을 직접 찾아가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으며, 그간 37개 기업과 자문단의 교수님들이 매칭되어 총 59회의 자문을 진행했습니다.
KAIST의 자문단이 도화선이 되어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대학들의 동참이 전국으로 확산했으며, 어제는 산업부의 지원으로 전국 12개 대학이 참여하는 ‘대학 소재·부품·장비 기술전략 자문단 출범식’을 KAIST에서 가졌습니다.

한 번 개발이 되면 임팩트가 매우 큰 기술 분야인 소재 개발을 위해서는 ‘긴 호흡’의 장기간 연구투자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2014년 일본에 노벨 물리학상을 안긴 청색 LED는 日 나고야 대학에서 1세대인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의 연구를 2세대인 아마노 히로시 교수가 대를 이어 30여 년간 수행한 기초연구 결과를 니치아화학공업사의 나카무라 박사가 이어받아 상용화를 성공시킨 기술입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기술의 경우, 美 이스트만 코닥연구소(Eastman Kodak)의 Ching W. Tang 박사가 1987년 다층 유기박막을 발광소자로 제안한 논문을 발표한 이후 20여 년에 걸친 상용화의 노력을 통해 비로소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개발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첨단 소재 기술의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긴 호흡을 갖고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KAIST는 선배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후배 교수가 계승·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초세대 협업연구실’ 제도를 운영 중이며,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할 연구자를 선발해 10년간 교수 평가 없이 장기간 지원하는 ‘Singularity Professor’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여덟째, ‘기술기반 글로벌 스타트업 육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살펴보면 대기업에 매우 편중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0.8%의 대기업이 수출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반면, 97%의 중소기업은 17%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국가 발전의 원동력은 대기업 주도의 성장전략이었지만, 우리나라가 더욱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술 기반의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특히, 세계시장을 지배할 글로벌 강소기업, 소위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의 육성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는 1,300여 개의 히든챔피언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강소기업의 수가 독일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스타트업 기업이 기술기반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술을 보유해야 하고, 글로벌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며, 세계 시장을 개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전략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기업가치 1조 원의 유니콘(Unicorn)은 물론 10조 원의 가치를 지닌 데카콘(Decacorn) 기업도 배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기반 글로벌 스타트업 육성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는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불리는 이스라엘입니다.
2년 전 제가 올메르트 前 이스라엘 총리와 대담을 하면서 이스라엘을 세계적인 창업국가로 이끈 다섯 가지의 성공 요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후츠파(Chutzpah)’로 표현하는 불굴의 ‘도전 정신’, 세계에서 통하는 ‘글로벌 기술개발’, 기초과학 연구자가 창업 교육도 담당할 만큼 넓은 저변을 가진 ‘기업가정신’, 국내는 물론 미국 실리콘밸리 등 해외와 밀접하게 연계된 ‘국내외 네트워크’,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국가 리더십’입니다.

세계적인 창업국가의 또 다른 사례인 미국의 경우, 대학이 기술기반 스타트업의 요람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발 창업 활성화의 근원을 살펴보면 1960년대에 美 스탠퍼드 대학의 프레데릭 터만(Frederick Terman) 교수가 학생들에게 창업 정신을 불어넣으며 대학의 상아탑(Ivory Tower) 이미지를 탈바꿈시킨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밑거름되어 이후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생들은 약 4만여 개의 기업을 설립했고, 540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우리나라 GDP의 약 1.5배인 2조 7천억 달러의 연 매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MIT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창업 성과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창업사관학교로 알려진 KAIST는 누적 기준 1,800여 개의 창업기업을 배출했으며, 그중 1,200여 개가 생존해 있습니다. 이들 기업의 연간 매출총액은 약 13조 6천억 원입니다.
내년 개교 50주년을 맞이하는 KAIST에 대해 정부가 지난 49년간 지원한 예산이 약 3조 9,000여억 원임을 고려했을 때, 창업 하나만 보더라도 KAIST는 투자자본수익률(Return of Investment, ROI)이 3배 정도 되는 성공한 국가 프로젝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창업 성과는 스탠포드, MIT 등 미국의 대표적인 혁신대학에 비해 1%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창업 활성화를 위해 여전히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홉째, ‘이공계 교육 혁신을 위해 3중나선 모델을 적용’해야 합니다.
제가 최근에 주장하는 우리나라 이공계 교육 혁신의 방향은 ‘3중나선(Triple Helix)’ 교육 모델을 도입해 교육과 연구와 기술사업화가 융·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모델의 핵심은 산업 현장의 문제들을 대학으로 가져와 해결책을 찾기 위한 교육과 연구를 실시하고, 연구성과를 기술사업화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지금 보고 계신 동영상은 KAIST에서 반도체 공장 자동 물류 시스템을 개발해서 기업에 제공한 사례입니다. 이러한 시스템 개발을 기업에서 의뢰받은 교수님께서는 과제의 수행에 필요한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과제참여 학생들에게 교육하며 이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고, 그 성과를 기업 현장에 성공적으로 적용하셨습니다.
기업을 경영하고 계신 여러분께서도 자체 연구개발 인력이 부족할 경우에는 대학과 협력하는 방안을 고려해 주십시오. 만약, KAIST에 기업의 문제를 의뢰하신다면, 이에 관심을 갖는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해결방안을 찾는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고, 그 성과를 기업에 전달하는 ‘3중나선’ 모델을 실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한 한국형 방정식을 만들어 추진’해야 합니다.
제가 ‘K-방정식’이라고 명명한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한 한국형의 성공방정식’에는 다음의 세 가지 핵심 변수가 존재합니다.
첫째 변수는 ‘혁신(Innovation)’ 입니다. 새로운 교육 혁신, 연구 혁신, 그리고 기술사업화 혁신을 해야 합니다.
둘째 변수는 ‘협업(Collaboration)’ 입니다. 산·학·연 협업, 민·관·정 협업, 그리고 글로벌 협업이 필요합니다.
셋째 번째는 ‘속도(Speed)’ 입니다. 규제개혁의 신속화, 부처 간 거버넌스의 효율화, 그리고 창업 가속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앞서 강조한 변화와 혁신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선도전략’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정권을 초월한 장기 계획과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美 상원의 라마 알렉산더(Lamar Alexander) 공화당 의원과 제프 빙거만(Jeff Bingaman) 민주당 의원은 “21세기에도 세계 최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추구해야 할 혁신전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저명한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모임인 美 한림원에 던졌습니다.
美 한림원은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인 ‘미국 경쟁력 강화 계획(American Competitiveness Initiative)’을 완성했습니다. 미국 의회는 보고서에 담긴 권고안을 받아들여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인준하고 법안을 마련했으며, 2007년 부시 행정부는 관련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착수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사업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8년간 지속해서 추진되었다는 것입니다.
정권을 초월해서 일관성 있게 과학기술 혁신사업을 추진한 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제가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정치에는 여야가 있지만, 과학에는 여야가 없고 단지 국가만 있을 뿐이다”입니다.
정치와 과학은 서로 밀고 당기며 서로의 역량을 증폭하는 푸시풀(Push-Pull)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과학계는 정치계에 자문하고, 논리를 제공하며, 일을 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하고, 정치계는 정책을 개발하고, 입법을 추진하며, 예산을 지원하는 등 과학계와 정치계가 역할을 분담하며 함께 가야 합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새로운 내각 인선 명단을 발표하면서 존 케리 前 국무장관을 기후특사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지명 수락 연설에서 과학의 역할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요함을 강조하며 “President Joe Biden will trust in God, and he will also trust in science to guide our work on Earth to protect God's creation”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탱고를 추려면 몇 사람이 필요할까요? 두 사람이 필요합니다.(It takes two to tango!)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정치, 정치와 과학이 함께 가야 합니다.

지난 반세기 우리는 산업화의 빠른 추격 전략을 통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태동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은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 오늘 저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선도전략’을 제안했습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세계 최고(Best)이거나, 최초(First)이거나, 유일한(Only) 소위 B‧F‧O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선도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면 골드만삭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의 예측처럼 30년 후인 2050년에 우리나라는 GDP 측면에서 G7 국가, 1인당 국민소득 측면에서는 G2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국가의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에 찬 전망은 여러분과 같은 조직의 리더들이 ‘비전(Vision)’을 갖고, ‘혁신(Innovation)’하며, ‘열정(Passion)’을 갖고 일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이러한 V·I·P 정신을 통해 우리는 ‘VIP(Very Important Player)’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Very Important Player’가 되기를 바라면서 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