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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LEADERSHIP

연설문

제16대 총장 이임사

작성자 총장실 작성일 2021.02.22 조회수887

요즘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마지막’인데, 오늘 정말 마지막입니다.


먼저, 코로나19의 위중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께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아직 종식되지 않은 상황 속에 이임식을 한다는 것이 많은 분께 민폐가 될 것 같아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공식 행사이기에 최소한의 분들만 모시고 이임식을 거행하게 되었음을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쁘신 일정 중에도 이임식에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고 과찬의 말씀을 해주신 김우식 이사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광형 차기 총장님의 과분한 인사 말씀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제가 차기 총장님께 환송사를 부탁드린 것은 KAIST에 새로운 전통을 만들기 위해 제안했는데 감사하게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지난 4년간 KAIST 발전을 위해 헌신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해 주셨던 보직자 여러분과 저의 리더십을 신뢰하며 협조해 주신 교직원 및 학생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저를 믿고 탄원서에 서명하며 성원해주신 KAIST 교수님들과 국내외 수많은 과기계 분들의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4년간 묵묵히 내조해준 아내와 기도로 성원해준 가족들에게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KAIST 총장으로서 지난 4년은 교직원 및 학생 총 15,000여 명에 이르는 구성원을 보살피고 섬기며 리더십을 발휘해야하는 막중한 책임감과 중압감으로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며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한편, 최초 동문 총장으로서 ‘KAIST의 지난 반세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50년을 여는 기반을 구성원들과 마련한다’는 사명감으로, 오당육락(五當六落)의 자세로 일하면서도 피곤한지 모르고 최선을 다해 일하며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KAIST 총장의 소명감을 처음 심어준 분은 지금은 작고하신 故 전무식 교수님을 위시한 몇 분의 선배 교수님들이었습니다.


17년 전, 연간 10억 원 규모의 창의적 연구사업을 수행하며 연구에 매진하던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전무식 교수님을 위시한 선배 교수님 4분이 제 방에 찾아오셔서 “지금 KAIST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데 개인 연구만 하지 말고 학교를 위해 총장이 되어 봉사하라”고 충고하셨습니다.


“지금 한참 연구에 매진하고 있고, 총장을 하기에는 제가 아직 젊은 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며칠 후 선배 교수님들께서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신 교수가 KAIST를 위해 기여할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지금처럼 연구를 열심히 계속해서 우리나라 첫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총장으로 일하는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KAIST 부임 후 6년간 쉼 없이 보직을 맡자 “연구를 잘할 사람이 왜 보직만 하냐”고 꾸짖던 선배 교수님들의 조언을 가볍게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님께 제 고민을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의 답변은 명쾌했습니다. “노벨상도 타고, 총장도 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두 길을 가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도 총장의 길이 상대적으로 쉽고 가능할 것 같아 택했는데, 그 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러 교수님이 기억하시다시피 2004년, 2006년, 2010년 3회 연속, 교수님들이 저를 총장 1순위 후보로 추천해 주셨는데 번번이 외국인 총장님들이 결정되어 제게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제 인생에는 KAIST 총장 기회는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정년 퇴임을 앞둔 2017년 2월에 16대 총장으로 선임되어 봉직하게 되었습니다.


KAIST는 태생적으로 과학기술 인력 양성과 연구에 있어 차별성과 수월성과 선도성을 보일 때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차별성과 수월성을 갖고 국내에서 선도적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그 존재 가치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향후 반세기는, 글로벌 무대에서 차별성과 수월성을 보이며 선도적 역할을 해야만 KAIST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총장의 소명감을 가진 후 13년이나 지나서야 KAIST 총장이 된 것은, ‘다음 반세기를 준비하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KAIST 동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감당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중차대한 시기에 최초 동문 총장으로 봉직하게 된 것은 무한한 영광이지만, 한편,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임기의 총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총장 취임 후 첫 번째 시작한 일이 구성원들과 함께 KAIST의 지난 반세기 역사를 짚어보고 다음 반세기를 향한 비전을 설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전 교수님들에게 ‘비전위원회’에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는 이메일을 발송했습니다. 몇 분이 참여를 신청할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결과는 전체 교수의 20%에 해당하는 120여 분의 교수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표해 ‘KAIST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조직의 구성원 중 20%가 능동적으로 깨어있으면 그 조직은 분명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학생, 직원, 동문 등 총 2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1여 년간 작업을 거쳐 KAIST의 새로운 비전으로 ‘글로벌 가치창출 선도대학(Global Value-Creative Leading University)’을 설정하고 교육, 연구, 기술사업화, 국제화, 미래전략 분야에서 여러 가지 혁신 방안을 제시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향후 50년 세계를 선도하는 학문적 가치, 기술적 가치, 경제적 가치,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대한민국, 나아가 인류 사회 발전과 번영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대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추진 동력이 우수 인력, 특히 ‘우수 교수’ 확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명문대학들은 교수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다행히 KAIST가 국내 선도대학이자 세계적 대학의 명성을 가지게 되면서 국내외 과학계에 우리 대학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4년간 학과장, 학‧처장, 부총장님들의 노력으로 학문적으로 뛰어난 165분의 신임 교수를 모셨습니다. 현재 전임 교수가 655명 계시니 4명 중 1명이 신임 교수입니다. 스포츠에 비유하면 한 팀의 25%가 젊은 선수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KAIST 비전 성취에 커다란 성장 엔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미국 대표적 명문대학 총장들에게 “총장의 사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첫째도 기금조성, 둘째도 기금조성, 셋째도 기금조성”이라고 답합니다. 그만큼 대학 발전에 있어 재원 확충이 중요합니다.


국내 대학 총장에게도 기금조성이 점점 중요한 사명이 되고 있습니다. KAIST의 경우 정부지원금이 전체 예산의 25% 수준입니다. 세계선도대학인 스위스 ETH Zurich의 경우 전체 예산의 70%가 정부지원금입니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경우도 정부지원이 70%입니다. 국내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학교 예산의 70%를 정부지원금으로 받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KAIST가 세계선도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기금조성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4년 전 총장에 취임하면서 마음속에 다짐한 총장 업무 수칙 첫 번째가 하루에 일 억 원씩 발전기금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업인들 사이에는 “신총장과 식사하려면 1억 원은 준비해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발전기금을 낼 만한 분이면 총장으로서 자존심을 버리고 열심히 발품을 팔며 KAIST의 새로운 비전을 열정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의 도움과 협조로 지난 4년간 모은 발전기금이 약정액 기준으로 2,000여억 원에 이르니 저와의 약속을 지키게 되어 다행입니다.


KAIST에 특별한 연고도 없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님,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님 등이 고액 기부를 하시는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 미래 희망이 KAIST에 있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입니다. 우리가 KAIST에서 희망의 메시지와 결과들을 지속해서 보여준다면 앞으로도 많은 발전기금을 모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개교 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두 번에 걸쳐 국제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MIT, Caltech 등 세계적 대학 총장들과 미국, 영국 등 7개국 대사들이 흔쾌히 초대에 응하는 것을 보면서 KAIST의 국제적 위상을 새삼 실감했고, 총장으로서 더욱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국제 포럼은 KAIST 구성원뿐 아니라 온라인 실시간 중계를 시청한 많은 분들에게도 우리 대학의 국제적 위상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50여 년 된 세계선도대학과 KAIST를 비교할 때 상당한 격차가 있음을 우리는 겸허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학문적 측면에서 보면 MIT는 9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Caltech은 41명입니다. 기술사업화 측면에서 MIT는 KAIST보다 50배의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흥하고 발전하는 기관이나 국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비전과 꿈을 공유하며, 열정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KAIST 구성원들도 지난 50년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다음 50년을 향한 비전과 꿈을 공유하며, 열정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간다면 지속적 발전을 이루어 마침내 세계선도대학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가 향후 50년을 바라보며 세운 ‘글로벌 가치창출 선도대학’ 비전이 현재는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50년 전 품었던 꿈과 비전이 오늘날 현실이 되었듯이, 새로운 비전 또한 50년 후 현실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4년을 회고해 보면 수많은 어려움과 고생에도 불구하고 제 인생의 가장 의미 있고 소중하고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KAIST 총장으로 일하는 보람과 즐거움은 총장이 혁신 방안을 제시하면 능력이 출중한 교수님들과 직원분들이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하여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타 대학과 차별화된 KAIST의 모습이며 KAIST가 국내 대표적 대학이 된 저력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10년간 DGIST 와 KAIST 총장으로 봉직하면서 21세기 대변혁의 수평사회에서 존경받는 이상적 리더십에 관해 수없는 고민을 하면서 대학을 경영했습니다.


‘비전’과 ‘혁신’과 ‘열정’으로 구성원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소통’과 ‘배려’로 구성원들과 함께하며, ‘지혜’와 ‘용기’로 기관에 닥치는 수많은 위기와 도전을 대처해 가는 ‘7 리더십’을 나름대로 정립하고 매일 새벽 기도로 하루를 열며 대학 경영에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미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임 기간에 수행한 업무 중 성과가 있다면 그 공은 저를 도와준 수많은 분의 것이고, 실패가 있다면 그 과는 저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퇴임하면서 갖는 개인적 소망은 총장 재임 기간 중 세운 향후 50년을 향한 ‘글로벌 가치창출 선도대학’ 비전이 제가 살아있을 때 조기 실현되어, 제가 역사에 남는 총장이 되길 바라셨던 아버님과 가족들의 기도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제 16대 총장을 마치면서 제 마음에는 많은 감사함이 있습니다.


KAIST 총장은 외풍을 많이 받는 자리이기에 임기를 온전히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과거에 종종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근 2년여에 걸친 어려움 속에서도 임기를 무사히 마치게 되어 감사합니다.


또한, 많은 분의 아쉬움 속에 박수를 받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아울러, 차기 총장으로 선임된 이광형 교수님은 저와 오랫동안 같은 비전과 철학으로 KAIST 발전을 위해 일해 오셨기에 향후 학교를 가속적으로 발전시켜주실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떠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많은 분이 저의 퇴임을 아쉬워하며 향후 계획을 묻거나 여러 가지 활동을 조언해 주십니다.


저는 89년 귀국하여 KAIST 교수가 된 이후 32년간 한 번도 안식년 없이 교수로서 과학자로서, 특히 지난 10년은 과기원 총장이란 공인으로서 앞만 보고 쉼표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좀 쉬면서 지난 30여 년간의 다양한 경험을 정리하고 가족들과의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이 계획을 제 인생의 최종 결재자인 하나님께서 허락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오늘 참석하신 여러분들 그리고 임기를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코로나19에 건강하시고 축복된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21. 2. 22.

KAIST 제16대 총장 신 성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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